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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나루 문단


엄마의 안개

 

 

 3월의 캠퍼스에서는 풋 내음이 난다. 막 돋아나려 준비 중인 잔디밭의 여린 잎, 산수유 노란 꽃술 뒤에 수줍게 도사린 가녀린 잎망울, 긴 겨울 동안 둘렀던 두꺼운 껍질을 벗으려는 느티나무의 어린 가지…,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교정 안의 모든 것에서 풋풋하고 싱그러운 냄새가 풍긴다. 풀과 나무와 꽃들만 그런 게 아니다. 생기로 활짝 핀 신입생들의 얼굴은 그 어떤 것보다 더욱 신선하고 발랄하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은 그들을 프레시맨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그들은 온통 꿈과 희망으로만 채워진 덩어리 같다. 규격화된 교복만 입던 몸에 걸친 가볍고 밝은 톤의 옷은 실바람에도 깃발처럼 휘날리고, 오고가는 발걸음에서는 마치 땅에서 한 치쯤은 떨어진 것처럼 흥이 묻어난다. 흡사 오랜 어둠에서 벗어난 것 같은 해방감의 여유가 그들의 몸을 오로라처럼 감싸고 있는 듯하다. 

 

입학한 지 여러 날이 지났지만 은지는 아직도 꿈에 그리던 대학에 들어온 감격에 젖어 있다. 대학 홈페이지 합격 확인 메뉴에 이름과 수험번호를 입력하고 엔터키를 누를 때의 그 초조함과 긴장감은 마치 몸을 폭발시킬 것처럼 팽팽했었다. 직사각형 빈 칸에 나타난 ‘합격’이라는 두 글자는 비록 한글 두 글자에 지나지 않았지만 거센 해일과 같은 기세로 온 몸을 휘감았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하고 싶은 일도 미뤄둔 채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렸던 긴 세월의 고생이 그 두 글자로 인해 일순간에 다 날아가 버리는 기분이었다. 그때의 그 흥분은 오래도록 가시지 않고 이어졌다. 아무리 좋은 일도 막상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정도가 점점 줄어들게 마련이고, 또 간절히 원했던 일도 실제 성취가 되고 나면 허탈해지는 게 보통이지만, 대학 합격의 환희는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그만큼 그 하나에 모든 것을 걸고 오직 거기에만 집중했던 탓인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때부터 한 번도 변하지 않았던 은지의 희망은 역사 선생님이었다. 그 꿈을 엄마가 졸업한 교사 양성 명문 대학을 통해 꼭 이루고 싶었다. 출신 고등학교와 도(道)가 다른 멀리 떨어진 대학이고, 또 집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해야 하는 불편함은 있겠지만 그것은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했어도 마찬가지였을 터였다. 서울 소재 명문 대학에 충분히 갈 수 있는 성적임에도 지방 소도시에 위치한 대학을 고집하는 은지에게 담임선생님은 좀 서운해 했지만, 학교의 ‘실적’을 위해 자신의 꿈을 접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은지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엄마와 둘이서만 살아왔다. 아빠가 다른 여자를 만나 가정 불화 끝에 이혼한 엄마는 딸 하나를 데리고 지금껏 혼자 살고 있다. 중학교 국어 교사인 엄마에게 은지는 삶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엄마에게 은지는 단순한 딸의 위치를 넘어 친구이자 자매였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연인도 되고 때론 남편의 자리를 대신해 주는 든든한 동반자 역할을 해 주기도 했다. 이제 은지가 엄마 품을 떠나 대학에 들어가게 되면 잠시 떨어져야 하겠지만, 4년 후 교사가 되어 엄마와 함께 다시 살아갈 날을 기약하며 집을 떠나왔었다. 

 

은지가 도서관에 가기 위해 계단을 올라가는데 휴대폰의 문자 메시지 신호가 울렸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학과장 교수님이 지시한 대로 조교 선생님과 학과 사무실의 전화번호를 입력해 놓았는데 바로 그 번호였다. 화면에 ‘이 메시지를 보는 즉시 과사로 빨리 오기 바람’이라는 문자가 떠 있었다. 학과 선배들 중에 같은 지역 출신이거나 또는 출석 번호가 같은 선배가 멘토가 되어 대학생활에 빨리 적응하도록 많이 도와주기는 했지만, 아직 여러 가지가 낯설기만 한 상황인데 학과 사무실의 호출은 잠시 은지를 당황스럽게 했다. 고등학교 때 상위권 성적의 은지는 엄마와 동창인 교감 선생님을 비롯한 선생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 교무실을 자주 드나들었었다. 학생회 임원으로서 해야 하는 일은 물론 선생님들의 작은 심부름도 꽤 했다. 그래서 교무실에 가는 게 그리 부담스럽지 않았는데, 다른 학생들은 특별한 잘못이 없어도 교무실이라면 괜히 그 분위기에 주눅이 들기 마련이었다. 대학의 학과 사무실은 고등학교 때의 교무실과는 물론 다르겠지만 그래도 그곳으로부터의 호출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무슨 일이지? 혹 뭔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은지는 발길을 돌려 학과 사무실로 향했다. 학기 초의 학과 사무실은 매우 복잡했다. 많은 학생들이 복작이는 속에서 복사기로 무슨 문서를 복사하는 사람, 무슨 서류를 들고 대기하고 있는 사람, 단체로 주문한 전공과목 강의 자료를 찾으러 온 사람, 교수님의 연락처를 물으러 온 사람, 컴퓨터 앞에 앉아 뭔가 문서를 작성하는 사람, 전화기를 붙들고 무엇인지 설명하는 사람 등등으로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다. 은지는 일단 기다렸다가 학과 사무실 도우미 학생에게 무언가 지시를 끝내고 돌아서는 조교 선생님에게 다가갔다. 

 

“저…, 호출 문자 메시지 때문에 왔는데요?” 

 

“문자 메시지?”

 

“네, 과사로 즉시 오라는….”

 

“아, 네가 은지니? 신입생들은 내가 아직 잘 모르니까, 먼저 몇 학년 누구라고 말을 해야 알지. 이건 기본이야. 다음부터는 꼭 그렇게 하도록. 알았지?”

 

“네, 잘 알았습니다.”

 

“근데, 너, 혹시 국어과 임영훈 교수님 알아?”

 

“아니요. 전혀 모르는데요.”

 

“그 교수님이 널 찾으셔. 그래서 부른 거야.”

 

“저를요? 무슨 일로…?”

 

“그야 나도 모르지. 언제 시간이 나면 한 번 찾아가 봐. 임 교수님 연구실은 요 앞 건물 4층에 있어.”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은지는 인사를 하고 과 사무실을 나왔다. 대체 뭔 일일까? 그 교수님은 어떻게 나를 알았을까? 같은 학과 학생도 아닌 나를 왜 찾았을까? 궁금증이 모닥불처럼 활활 피어올랐다. 그러나 궁금하다고 해서 금세 찾아갈 수는 없었다. 물론 나쁜 일로 찾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뭔가 조금이라도 그 이유를 알아야 그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을 것이고, 왠지 그런 다음에 찾아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3월 내내 은지는 학교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익히기 위해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느라 임 교수님 찾아가는 일을 잠시 뒤로 미루고 지냈다. 게다가 신입생 환영회 등 여러 모임에 불려 다니다 보니 한가한 시간도 별로 없었다. 학과의 학년별 환영회는 물론 모교 고등학교 선배, 많지는 않지만 같은 지역 출신들로 구성된 향우회,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 번호 선배 등 여러 곳에서 불러 축하를 해 주었다. 사실 환영회라는 건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일 뿐이고, 대개는 낯선 사람들이 만나 같이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그런 자리를 통해 서먹했던 사이가 가까워지고, 소속감이 높아지는 현실적인 효과가 있기도 했다. 그것은 어느 사회에나 있는 일종의 통과의례일 것이기에 새로운 사회에 동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혼자서만 빠지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은지는 모범생답게 지금까지 술을 마셔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그런 자리가 매우 불편했다. 또 매번 되풀이되는 자기소개, 노래 부르기, 장기 자랑 같은 순서 때문에 곤혹스럽기도 했다. 대학 신입생의 과도한 신고식이 불미스러운 일로 이어져 매년 매스컴을 장식해서인지 음주를 강요하는 풍속은 예전에 비해 많이 누그러졌다. 그래도 선배들이 주는 술잔을 뿌리칠 수 없어 마시는 시늉만 하거나 혹은 음료수를 따라 술 대신 마시기도 했다. 어떤 자리에선가 짓궂은 선배 하나가 억지로 술을 마시게 해서, 은지는 며칠 동안 그 후유증으로 강의도 제대로 못 들을 만큼 시달리기도 했다. 그 덕분에 은지는 아예 술 못 마시는 사람으로 분류되어 그 사실을 기억하는 친구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는 오히려 편해질 수도 있었다. 

 

도서관을 비롯해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학교 시설 위치 확인과 사용 요령을 익히는 일도 필요했다. 선배를 따라가 그들이 하는 걸 보며 배우기도 했고, 때에 따라서는 혼자 가서 궁금한 걸 물어보며 익히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 대학만의 특색인 담임 교수제도에 따라 담당 교수를 찾아가 면담도 해야 했고, 몇 년 후의 일이기는 하지만 교사 임용 시험을 대비해서 선배들의 조언에 따라 미리 대비도 해야 했다. 이런 일들에 파묻혀 사느라 은지는 임 교수님을 찾아가는 일을 아직껏 하지 못했다. 그러나 가슴 한 구석에 도사린 궁금증은 오랜 체증(滯症)처럼 늘 마음에 걸려 있었다. 

 

이 대학의 교화(校花)로 지정된 하얀 목련꽃이 흐드러지게 만개하고, 진달래꽃 망울은 따스한 햇볕을 받아 금세라도 팡 터져 버릴 듯 탱탱하게 부풀어 있는 오후였다. 이제는 낯선 학교생활에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 교양 과목 위주로 듣는 강의도 교수님마다 강의 스타일이 다른데다 제시되는 과제 또한 고등학교 때와는 딴판이어서 아직 만만치는 않았지만, 그런 대로 제법 몸에 익을 만큼 익숙해졌다. 

 

은지는 어제 저녁 엄마와 긴 통화를 했다. 여기로 온 이후 거의 매일 전화를 해서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그래도 미진한 부분은 메신저나 이메일을 통해 시시콜콜 주고받았지만, 임 교수 얘기는 일부러 하지 않고 미루어 두었었다. 국어과 홈페이지 자료를 확인해 보니 임 교수는 엄마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이 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둘은 분명 서로 알고 있는 사이일 텐데, 대학에 합격했을 때나 여기로 떠나 올 때 엄마는 왜 한 마디도 하지 않았을까. 객지로 나가는 딸이 걱정되어 누군가 작은 인연이라도 있는 사람이 있으면 부탁을 하는 게 상례일 텐데 엄마는 왜 일언반구도 없었을까. 혹 둘 사이에 무슨 말 못할 사정이라도 있는 걸까. 별별 상상을 다해 보았지만 둘 중 누누라도 직접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전에는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어제 저녁 통화 중에 어렵게 말을 꺼내 보았다. 

 

“엄마,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솔직하게 말해 줘야 해.”

 

“우리 공주님이 또 뭐가 궁금하신가. 말해 봐.”

 

“우리 대학 국어과 임영훈 교수님 알지?” 

 

“임 누구라고?”

 

“임, 영, 훈 교수님.”

 

“글쎄, 나보다 한 두 해 선배이긴 한 거 같은데, 하도 오래 연락을 않고 살아서 잘 기억나지는 않는데? 왜, 그 교수와 무슨 일 있었어?”

 

“그 교수님이 날 찾으셨대. 시간 나면 찾아오라고 했는데 아직 못 갔어. 혹시 엄마가 부탁한 거 아냐?”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인데, 부탁은 무슨…. 그리고 설령 아는 사이라 해도 몇 십 년 만에 불쑥 연락해서 무슨 부탁을 한다는 것도 염치없는 일이잖아? 너도 알다시피, 내가 대학 졸업 후 동창회나 동기들 모임 같은 데 전혀 나가지 않아서 그쪽 사람들 거의 몰라. 아마 동창들한테 난 까마득하게 잊힌 사람일 걸?”

 

“정말이지? 엄마는 아무 연락도 안 했단 말이지?”

 

“그럼, 내가 너에게 뭘 숨기겠니? 이혼한 여자라고 입방아에 오르는 게 싫어 일부러 고립되다시피 살아온 거, 네가 더 잘 알고 있잖아?”

 

“그런데, 그 교수님이 어떻게 날 알고 연락을 하라 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미스터리란 말이야.”

 

“설마 네게 무슨 해로운 일이야 되겠니? 한 번 찾아가 보지 그래?”

 

“응, 나도 그럴 생각이야. 하지만 뭔가 짐작할 만한 언턱거리라도 있어야 마음의 대비를 하고 갈 거 아냐? 그래서 망설이고 있는 거야.”

 

“잘 됐지, 뭐. 객지에서 힘들고 어려울 때 후원해 줄 사람 하나 생겼다고 생각해.”

 

“정말, 그렇게 가볍게 생각해도 될까?”

 

“학과는 다르지만 교수님들끼리는 서로 통할 테니까, 너에게 도움이 되면 됐지 손해는 나지 않을 것 같은데? 사람 일이란 게 언제 어떤 경우가 닥칠지 모르는 거잖아?”

 

“알았어. 내일 오후에는 수업이 없으니까 한 번 찾아가 볼게.”

 

통화를 끝내고도 풀리지 않는 의문 때문에 은지는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선지 매일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음에도 오늘 아침엔 늦잠을 잤다. 눈을 뜨자마자 서둘러 일어나 아침밥도 못 먹고 오전 일과에 임해야 했다. 두 시간 수업을 마치고 아침 겸 이른 점심을 먹었다. 미리 시간표를 확인해 본 결과 임 교수님도 오후 수업이 없는 날이었다. 은지는 바짝 긴장하여 콩콩 뛰는 가슴으로 임 교수 연구실 문 앞에 서서 잠시 숨을 고른 뒤 노크를 했다. 

 

“누구세요? 들어오세요.”

 

안에서 낮고 굵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은지는 살며시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연구실 안으로 들어섰다. 눈앞을 가로막은 책장에 천정 높이까지 책이 가득했다. 책장은 벽 쪽에 있는 것 말고 방 가운데도 가로 놓여 있었는데 거기에도 책이 빼곡했다. 책장뿐 아니라 바닥에도 여기저기 책이 쌓여 있고, 논문을 복사한 자료를 비롯해서 학생들의 리포트나 시험지 같은 것들도 군데군데 수북했다. 빈 공간이 거의 안 보일 정도로 연구실 안이 온통 책과 연구 관련 자료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로 무슨 문서를 작성하던 임 교수는 은지를 흘깃 돌아보고는 학생임을 확인한 후 눈길을 다시 화면으로 옮기며 무신경하게 말했다. 

 

“신입생인가 본데, 상담할 일이 있으면 미리 약속을 하고 그 시간에 와야지. 아니면 연구실 문에 붙어 있는 내 시간표에 학생 면담으로 표시되어 있는 시간에 오든지.” 

 

“저…, 저는 국어과 학생이 아닌데요.”

 

“그래? 다른 과 학생이 무슨 일로 날 찾아왔나?”

 

임 교수는 그제야 의자를 돌려 은지를 향해 물었다. 은지는 윗사람을 만났을 때는 먼저 자기를 소개해야 한다는 조교 선생님의 충고가 생각나서 또박또박 자신의 소속과 이름을 말했다. 

 

“저는 역사과 1학년 손은지라고 하는데요, 교수님께서 며칠 전에 저를 찾으셨다고 해서 왔습니다. 연락 주신 즉시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아, 네가 은지구나. 조교에게 연락을 해 놓고 깜박했었네. 나이가 들면 자꾸 잊어버리는 게 많아져. 그래, 반갑다. 거기 앉아.”

 

임 교수는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하나 꺼내 마개를 따서 건네주었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조카나 제자를 대하듯이 그 음성이나 태도에 친근감이 묻어났다. 

 

“그래, 학교생활은 어때? 엄마와 처음 떨어져서 살려니 힘든 일이 많지?”

 

“처음엔 힘들었는데, 이젠 많이 좋아졌어요.”

 

“다행이군. 신입생들 중에는 집 떠난 애를 삭지 못해 고생하는 친구들도 꽤 있는데.”

 

“교수님과 선배님들이 모두 친절하게 보살펴주셔서 잘 적응하고 있어요.”

 

“그게 우리 모교의 전통이자 자랑이지. 그런데, 내가 은지를 어떻게 알고 불렀는지 궁금하지 않아?” 

 

“아까부터 여쭙고 싶었지만 어른에게 버릇없다고 하실까봐 참고 있었어요.”

 

“그럴 테지. 사람 인연이라는 게 말이야, 그게 참 묘한 거 같아. 생판 모르는 사람도 한두 다리 건너면 다 연결이 되거든?”

 

“저의 엄마를 잘 아세요?”

 

“어렴풋이만 알지. 은지 엄마는 내 2년 후배였지만 학교 다닐 때는 거의 얘기도 나눠보지 못한 사이였어. 졸업한 후에도 만난 적이 없었지. 그러니 얼굴조차 잘 기억되지 앉는 게 당연한 일이고. 그런데 말이야, 은지가 졸업한 고등학교의 교감이 내 친구야. 얼마 전에 우연히 오래 못 보았던 그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은지 얘기를 하더군. 은지 엄마 성미에 누구에게 부탁을 할 사람도 아니고, 곱게 키운 딸을 객지로 내보내며 얼마나 걱정이 되겠느냐면서, 학과는 다르지만 나보고 가끔 불러 밥도 사 주고 위로해 주면서 딸처럼 돌보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더군. 그래서 알게 된 거야.” 

 

“무시하셔도 될 일인데 그렇게까지 그런 신경 써 주셔서 죄송하고 또 고맙습니다.”

 

“고맙긴, 앞으로 어려운 일 있으면 찾아와. 내가 무슨 해결사는 아니지만 은지를 도울 일이 있으면 힘이 되어줄 게.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이라 어렵긴 하겠지만, 은지가 괜찮다면 아빠 형제처럼 편하게 생각해도 돼.”

 

“감사합니다. 앞으로 종종 찾아뵙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자고. 혹시 내게 뭐 물어볼 거 더 없나?” 

 

“언제 시간 나시면, 엄마 대학 생활 때 얘기를 듣고 싶어요. 엄마는 다른 건 다 얘기해도 대학 때 얘기는 전혀 하지 않았거든요. 그게 늘 궁금했어요.”

 

“그러자고. 근데 미안하지만 나중에 다시 한 번 올 수 없을까? 지금은 내가 급히 써야 할 원고가 있어서 좀 바쁘거든.” 

 

“고맙습니다, 선생님. 나중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은지는 무거운 숙제를 끝낸 기분으로 임 교수의 연구실을 나섰다. 볼을 간질이는 실바람처럼 마음이 가벼워졌다. 

 

 

바람 없는 밤에 내린 눈처럼 소리 없이 벚꽃이 피었다. 교정에 있는 벚나무는 물론 대학 앞의 강 건너 공원에 있는 벚나무들도 처녀들처럼 눈부시게 옷을 갈아입고 정겨운 손짓을 해댔다. 백제의 옛 수도였던 이 도시에는 곳곳에 많은 유적들이 남아 있는데, 그 위에 화사한 벚꽃까지 더해 수많은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붙들고 있었다. 

 

은지는 휴일을 맞아 모처럼 친구와 함께 공원을 찾았다. 그 동안 주로 기숙사와 강의실만 오가며 살았고, 학교 근처의 음식점이나 드나들었을 뿐 국사 책에도 나오는 이 도시의 왕릉 유적조차 한 번 관람하지 못했다. 그만큼 개인 시간을 내기가 어려울 정도로 바쁜 시간들이었다. 입시의 면접 때, 자신이 뽑은 카드 번호에 따라 교수님이 질문을 했는데, 은지가 뽑은 번호는 대학 입학 후의 수학(修學) 계획을 묻는 문제였다. 은지는 그때 전공 공부 외에 시간이 나는 대로 봉사 활동이나 학과 특성을 고려하여 답사 동아리 활동 같은 걸 해 보고 싶다고 답변했었다. 그러나 정작 입학을 하고 보니 그런 생각은 그야말로 ‘사치스러운’ 생각이었다. 미팅이나 이성 교제 같은 낭만적인 대학생활 또한 말 그대로 꿈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용케 그런 즐거움을 누리는 친구들도 없지는 않았으나, 은지 같은 ‘범생이’에게 그런 일은 현실과 동떨어진 드라마 속의 이야기에 불과할 정도로 할 일이 빼곡한 일정이었다. 

 

공원 입구에 도착하여 이 도시만의 독특한 제도인 사이버 시민증을 제시하자 입장료를 받지 않고 통과시켜 주었다. 오래된 비석들이 죽 늘어서 있는 길을 걸어 올라가니 마침 문루 주위에서 수문병 교대식이 열리고 있었다. 잠시 서서 구경을 했다. 얼마나 정확하게 고증이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옛 정취보다는 꽤 무거워 보이는 옷을 입고 땀을 흘리는 병사 역할 청년들이 안쓰럽게만 보였다. 

 

잘 정비된 산책로를 따라 올라갔다. 가끔 수학여행을 온 초등학교나 중학교 학생들이 인솔 교사를 따라 줄지어 지나가기도 했다. 추정 왕궁지라는 광장에 올라서자 온 정성을 다해 화장을 한 난숙한 여성처럼 하얀 꽃송이를 주저리주저리 매단 벚나무들이 둘레를 따라 늘어 서 있었다. 하롱하롱 흩날리는 꽃잎 아래에서 가벼운 음식을 먹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은지는 조선시대 어느 임금이 난리를 피해 피난 와서 머물렀다는 정자와 그 유래를 기록한 비석, 그리고 깊은 저수조를 구경하고 친구와 함께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거기서 내려와 다시 산책로를 걸어 위로 올라갔다. 무슨 건물이 있던 터, 또 한자로 쓰인 현판을 매단 누각 같은 게 나타났다. 강 쪽으로는 성벽이 죽 둘러 있었는데, 절벽에 쌓은 성은 바깥으로는 낭떠러지였지만 위는 평지에 맞닿아 편히 걸을 수 있는 길을 겸하고 있었다. 그 위로 몇 걸음 옮기자 조망이 툭 트이면서 강물이 내려다 보였다. 건너편엔 그들이 공부하는 대학 캠퍼스와 아파트 단지, 그리고 개발 붐을 타고 건설된 모텔과 상업용 건물들이 여느 도시 풍경 못지않게 손에 닿을 듯 펼쳐져 있었다. 은지는 강에서 가볍게 올려 부는 싱그러운 바람을 맛있는 음식을 포식하듯 깊게 들여 마셨다. 막혔던 수로에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온 몸에 새로운 기운이 감도는 것 같았다. 

 

“아, 살 거 같다. 입학하고 나서 내내 숨이 막히는 것 같았는데, 이 시원한 바람과 멋진 풍경이 나를 다시 살려 내는 것 같아.”

 

“그래, 정말이야, 참 좋다, 그지? 선배들이 왜 공주에 오면 여기를 꼭 봐야 한다고 했는지 알 거 같아. 진작 오지 못한 게 후회가 된다. 넌 안 그래?”

 

“동감, 동감, 완전 동감이야.”

 

“근데, 이 아름다운 경관을 망치는 저 공사판은 정말 꼴불견이다. 수 천 년 이어져 온 유서 깊은 유적지 코앞에서 왜 저런 공사를 벌여야 하지?”

 

그 이름조차 아름다운 금강. 그 강은 영문도 모른 채 권력자 한 사람의 고집으로 강행되는 4대강 사업으로 인해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물고기와 조개들이 수수 만 년 평화롭게 살아온 강은 느닷없는 인간의 삽질로 인해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저 위쪽 강 한복판에 들어선 포클레인의 굉음과, 모래를 실어 나르는 트럭의 소음으로 조용히 잠자던 강은 만신창이가 되어 신음하고 있었다. 

 

“저런 모습을 보고 나서도 이 공사를 강 살리기라고 우기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정신이 좀 이상한 사람이 아닐까?”

 

은지는 갈가리 찢긴 강을 내려다보며 엄마를 떠올렸다. 자신의 몸이 찢기고 파괴되는지도 모르고 오직 자식을 위해 걱정만 하는 엄마. 저 강은 어쩌면 망나니 자식의 행패를 보면서도, 오히려 그 자식만 염려하는 어머니일지도 모른다. 그런 어머니 강을 유린하는 저 공사는 욕망으로 뭉친 인간의 패륜적 행위가 아닐까. 은지는 망연히 강을 내려다보다가 며칠 전 임 교수를 만나 들었던 엄마의 얘기를 떠올렸다. 

 

 

은지 엄마가 대학을 다녔던 1970년대 중반은 격동기였다. 대통령의 영구 집권을 가능케 한 유신 헌법과 긴급조치로 민주주의는 이름만 남았고, 대학 또한 학문 연구나 낭만보다는 학도호국단 운영 등 군대 조직과 유사한 분위기로 경직되어 있었다. 

 

당시 호남지역에는 아직 국립 사범대학이 없어서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이 대학으로 진학해야 했다. 또한 사범대학생들은 수업료를 면제받아 등록금이 저렴했고, 졸업과 동시에 국가에서 2급 정교사로 발령을 내 주었으므로 경제 사정이 어려운 학생들이 많이 지원했다. 그래서 그때 재학생들은 대개 똑똑하고 가난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여학생들은 남학생과 동등한 조건으로 경쟁하면 들어오기가 어려워서 가산점을 부여하는 특혜를 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학생은 소수에 불과해 연애하는 남학생은 친구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임 교수가 기억하는 은지 엄마 얘기는 그가 직접 겪은 것이 아니라 흐릿한 소문을 전하는 것이어서 사실과 거리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당시 분위기와 대학의 풍속은 누구보다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서 은지는 마치 그 당시 학생이었던 것처럼 실감나게 임 교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은지 엄마는 3학년 때 지독한 연애를 했다고 한다. 상대는 불어과 학생이었다. 서울 출신의 그 남학생은 재주가 많았다. 노래도 잘 부르고, 술도 잘 마시고, 유머 감각도 풍부했다. 게다가 연극반 책임을 맡아 본인이 직접 연기도 하고 또 연극을 기획하기도 하고 연출도 했다. 당연히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런데 연극반 소속 학생들은 사회의식이 강해 현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직설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시대였기에 그들은 풍자적인 마당극 같은 걸 통해 은밀하게 관객과 소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보기관 사람들은 학생들보다 한 수 위였다. 연극반뿐 아니라 탈춤반이나 대학 언론사 기자 등 체제 비판적인 학생들은 끊임없이 감시와 미행을 당해야 했다. 그러던 중에 그 남학생은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는 민중극 멤버들과 만나 공연을 상의하다가 발각이 되어 불온 단체 조직 혐의로 검거되었다. 지금 같으면 아무 문제도 되지 않을 하찮은 일이, 없는 일도 만들어낸다는 기관원들에 의해 어마어마한 사건으로 둔갑되었다. 학교에서는 진상조차 확실하게 확인해 보지 않고 언론에 보도된 기사의 잉크 냄새도 채 가시기 전에 냉큼 제적을 시켜 버렸다. 아마도 대학 자체의 판단이라기보다는 상부의 지시에 의한 강압에 의한 조치였을 가능성이 컸다. 

 

은지 엄마는 모든 걸 함께 했던 연인의 전광석화와 같은 제적 처리와 교도소 수감이라는 상상도 못할 사건의 회오리로 엄청난 충격을 받아 학교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 세상 모든 게 의미가 없어 보였고, 공부를 하고 싶은 의욕까지 말짱 사라져 버렸다. 몇 날 며칠을 잠도 못 자고, 먹지도 못하고 고민을 했다. 다 털어 버리고 세상에서 도피하듯 수녀가 되거나 스님이 되어 버릴 생각까지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적인 여러 제약이나 또 자신의 역할 같은 것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렇게 했을 때 자신의 몸이나 마음은 편할지 몰라도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또 다른 부담과 고통을 끼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결국은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그 후 은지 엄마는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친구들도 전혀 만나지 않고, 어떤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고, 외톨이로 떨어져 거의 혼자서만 살았다. 마치 죽어서 사라진 사람처럼 있으면서도 없는 그런 그림자 같은 삶을 살았다. 

 

대학 졸업 후 고향의 중학교로 발령을 받아 교사 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모교를 찾거나 동창들을 만나지도 않고 살았다. 결혼 후 남편은 그런 폐쇄적인 은지 엄마를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그쪽 이야기라면 듣고 싶지도 않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 이유를 시시콜콜 설명하기도 싫었고, 또 막상 이야기를 해 봤자 제대로 이해해 줄 사람도 없을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늘 한쪽에 벽을 만들어 놓고 사는 은지 엄마가 부담스럽고 불편했던지 남편은 은밀하게 다른 여자를 만나기 시작했다. 살갑게 대해 주는 그 여자에게 빠져 이혼을 요구했을 때, 은지 엄마는 딸을 자신이 키우겠다는 것 외에 아무 조건도 달지 않고 선선히 서류에 도장을 찍어 주었다. 

 

그 후 은지 엄마는 이혼한 여자의 딸이라는 말을 듣지 않게 하기 위해 은지에게 엄마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남김없이 다 바쳤다. 그런 덕에 은지는 비어 있는 아빠 자리를 제외한 그 어떤 것에서도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사랑과 뒷바라지를 받으며 자라며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은지가 조금도 모나거나 남의 눈총 받을 일을 하지 않고 살 수 있었던 데는 엄마의 그런 헌신적인 희생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뭔 생각을 그렇게 오래 해?”

 

“응, 미안해.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났어.”

 

“참, 엄마가 우리 대학을 졸업했다고 했지? 그러면 분명 여기도 와 보셨겠네?”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엄마는 여기 얘기를 통 하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어.”

 

“나 같음, 딸이 대를 이어 들어간 대학이 자랑스러워서라도 얘기를 할 거 같은데….”

 

“뭔 사정이 있겠지 싶어. 실은 오늘 여기 온 것도 행여나 무슨 단서 같은 게 잡힐까 해서 온 건데, 아무 소득이 없네.”

 

그 사이 시간이 많이 흘러 어느 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강을 서식지로 하던 새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허공을 배회하는 가운데, 저 아래 강 쪽으로부터 서서히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안개, 눈앞에 스멀거리는 안개는 선연히 존재하면서도 동시에 실체가 없는 허상이기도 했다. 추하고 아름다운 것을 가리지 않고 덮어 버리는 안개는 세상만사가 허망하다는 사실을 온 몸으로 실증하고 있었다. 주위의 재혼 권유를 뿌리치고 여태껏 홀로 고독하게 살아온 엄마에게는 젊은 시절의 그 남자가 안개처럼 생생하게 살아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엄마의 안개, 그것은 엄마가 돼 봐야만 비로소 알 수 있는 비밀인지도 모르겠다. 

 

천천히 몸을 휘감아 오르는 저녁 안개가 포근했다. 

 

 

 

  #  이 소설은 <공주대신문>에 연재하였던 것을 일부 수정하여 <공주문학 > 24집에 발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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